정확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인터넷에서 여러 자료들을 총 수집하여 정리해놓았는데, 배경/원인이 잘 구분이 안되서 걍 써놨어요

 

1. 배경


좌군 12군, 우군 12군, 친위군 16군을 합해 113만 3800명이 북경에서 고구려로 출발했다또한, 수 양제는 활발한 교역을 위해 세 개의 운하(통제거, 산양독, 강남하)를 건설했다.



2. 원인


중국의 남북조 시대를 수가 통일한 후, 고구려는 수에 사신을 보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수는 적대적 태도를 유지해 고구려에게 복속을 강요하며 동북쪽으로 세력을 넓히고자 하였다.

결국 고구려가 수의 침입을 경계하여 요서 지방을 먼저 공격하였고,  수는 대대적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하지만 자연재해와 풍랑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되돌아갔다.



3. 경과

  수 문제는 죽고, 문제에 뒤를 이어 612년 수 양제는 113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침략을 강행했다. 이때 113만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다고 한다. 이때 수나라 육군은 고구려의 전방 요지인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고구려군의 완강한 방어에 실패하였으며, 수군도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성을 치다가 크게 패배했다.

  이에 초조해진 양제는 별동대 30만을 보내 직접 평양성을 치게 하였지만 을지문덕(고구려)은 수군지연목적으로 수군을 평양성으로 유인하였고, 수양제가 고구려의 국도인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수는 내부 불화, 물자 부족 등으로 세력이 악화되었다. 고구려는 평양성 30리 앞에서 철수하는 수군을 공격해 전쟁주도권을 가졌고 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는 수나라 군사가 살수(지금의 청천강)를 건널 때, 을지문덕은 보급로를 차단하고, 미리 막아 놓았던 강물을 터뜨려 물에 쓸려 내려가는 수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모두 물리쳤다. 30만이 다리를 동시에 건너는 것은 불가능해 후퇴하며 진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후방부대는 전투력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한다. 수나라는 전멸했고, 200만 명에 달했던 수군은 겨우 2,700명에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4 결과



살수대첩으로 인하여 전쟁은 고구려의 대승리로 끝이 났다. 수나라는 그 후 613년과 614년에 거듭해서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고, 오히려 이로 말미암아 수 내부의 동요가 일어나 종말을 재촉하고 말았다. 한편 고구려는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신장시켰으나 많은 국력을 소모하였다.

 결국 수는 무리한 토목 공사와 고구려 원정의 실패로 국력이 소모되며 멸망하고 말았다.


이번 기말고사때 살수대첩으로 수행평가를 봤는데, 20점만점에 18점 받은내용..ㅠㅠㅠ
kbs역사스페셜내용 참고하세요 http://www.cyworld.com/eunayoon/3356593

Posted by yerintil